종교란 본디 나약한 인간이 자신을 합리화하고,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만든 것이다.
즉, 안좋은 사건이나 결과를 대함에 있어서
타인(신)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타인(신)을 원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는 그러한 전지전능의 존재를 믿음으로서만 가능하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나를 이렇게, 상황을 이렇게, 결과를 이렇게 만든 것이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식으로 정신승리를 하는 것. 그것이 종교의 요체다.
따라서 인간은 그 존재를 강하게 믿어야만 그 존재를 비난할 수 있고 그 존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심이 바탕이 될 때, 인간은 자신이 겪은 정신적 충격을 쉽게 완화할 수 있는 갑옷을 입게 된다.
한마디로 종교란
"에이 운이 나빴어"
"이건 정말 불가항력이야"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어"의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를 믿는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신승리가 너무 지나친 수준이라면 당연히 독이 되겠지만
정신승리가 전혀 없다는 건 또 다른 의미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실패가 전혀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실패의 쓴 맛을 본 인간이 다시 일어서려면 일종의 '정신승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에이 운이 나빴어"
"이건 정말 불가항력이야"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어" 는 이 경우 인간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새로운 희망을 제공해준다.
이런 측면에서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최선을 다 했으니, 그 다음은 하늘의 뜻을 기다리겠다. "
이 말의 이면에는 "만약 그 결과가 안좋다면, 그건 하늘의 탓이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는 정신승리도 깔려 있다. 동양에서의 '하늘'은 서양에서의 '신'과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전지전능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란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최고보다는 최선을 추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가 없어져야 한다거나 종교를 믿는 이들은 바보다라고
말해서도 안되고, 말할 수도 없게 된다.
하지만 같은 논리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이는 적용 될 것이다.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일부의 극성 신도들의 태도는
되려 종교인의 얼굴에 먹칠 하는 꼴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삶의 방식을
전지전능한 존재를 통해서 인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개념 없이 체득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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