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사망소식을 접할 때,
댓글이나 커뮤니티 게시판, 카톡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이다.
그런데 이 문구가 너무 흔하게 쓰이다보니
어느 순간인가 문득 일종의 밈처럼 느껴진 적이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억울한 자식의 죽음이나 그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부모의 감정적인 성토글에서
다른 말은 하나도 안하고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는 댓글만 덩그러니 달아놓고 사라지는 네티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럴때마다 나는 정체 모를 위화감을 느낀다.
약간은 동문서답 하는 느낌이랄까?
1. 누군가가 죽었다 = 조의를 표하는게 예의이다
2. 내가 조의를 표했다
3. 나는 예의바른 사람이다.
천편일률적인 공식(1)과 자신을 예의바르고, 상식있는 사람으로 가꿔나가고 싶은 욕망(3)이 결합되면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반응'(2)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문장을 볼때마다 불편했다.
사람이 쓴 문장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오늘 그 불편함이 정말 크게 다가온다.
전두환의 사망소식을 접하면서
일부 글
일부 댓글
일부 카톡방
에서 심심찮게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명복이란 무엇인가?
말그대로 명계(사후세계)에서의 복을 말한다.
즉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은
저세상에서 복 많이 받고 잘 살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전두환이 과연 그럴만한 인물인지에 대해 논하려는건 아니지만,
과연 지금 명복을 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전두환 지지자 내지는 전두환을 좋아하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명복을 빈다는 표현은 아무에게나 써도 되는 표현이 아니다.
명복을 빈다고 해서 당신이 예의바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명복을 빌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무례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가 죽었다 = 조의를 표하는게 예의이다
위 공식부터가 틀려먹었다.
조의도 사람을 봐가면서 표하는 것이다.
명복도 사람을 봐가면서 빌어주는 것이다.
전두환의 사망소식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반응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군요. 당신은 전두환의 삶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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