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새 벽이었다.
의심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것은 높디 높았고, 나는 그 끝과 두께를 가늠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반응이자 행동이자 선택이었고, 곧 예정된 결과였다.
벽을 보면서 재밌다고 느낀 점은 새 벽을 따라 뿌리내린 늙은 담쟁이들의 모습이다.
담쟁이덩쿨은 몇년생 식물이지?
내 눈에 저 덩쿨들은 나보다 오랜 기간 존재했던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담쟁이덩쿨에 관한 정보를 찾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것도 나의 반응이자 행동이자 선택이었고, 곧 예정된 결과였다.
다만 추측건대, 저건 인류사와 함께 자라 온 덩쿨이 분명하다. 나는 이 점에 내 스스로를 걸 수 있다.
아니라면 날 가져요.
하지만 그건 모순이잖아?
그러니 날 가져요.
...
사실 담쟁이덩쿨이 온통 그것을 뒤덮고 있어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늙은 담쟁이덩쿨뿐이지만 나는 결코 그것이 새 벽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의심하기 싫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허용될만한 어설픈 믿음이 아니다.
분명 그것은 새 벽이다.
내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벽이다.
새 벽이 아니라면 나는 죽을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죽을 때는 아니다. 그러니 저것은 새 벽이었다.
어쨌거나 저것은 새 벽이었다.
의심하는 자에겐 죽음을 선사하리라.
운명?
닥쳐
새 벽도 언젠가는 새 벽이 아니게 된다.
'새롭다'의 기준은 무엇이지?
너무 어려운 주제다.
나는 의심하기를 포기한 자이므로 생각할 수 없었지만, 직관적으로는 새 벽이 더는 새롭지 않았다.
아니 '감각적으로는'이 더 맞다고 느껴지지만 글을 고쳐 쓸 엄두도 나질 않으니 그대로 내버려두자.
새 벽을 보면서 이상하다 느낀 점은 빼곡히 뿌리내렸던 담쟁이들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류사와 함께 해 온 덩쿨이 얼마나 지났다고...
스트레스로 내 눈이 더 안 좋아진걸까?
뭐야 탈모야?
...
일단 내 눈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담쟁이도 살아있는 존재였다.
제 아무리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승고적도 가꾸는 이 없으면 유지 될 수 없다.
그렇다. 유지는 관리의 인과적 결과다.
That's a management.
경영학 좀 배우셨나봐?
아뇨 행정학이요.
...
물론 경영학도 배우긴 했습니다만.
......
어쨌거나 담쟁이 덩쿨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담쟁이를 관리할 수 없었다고 믿는다.
아니 담쟁이를 니가 왜 관리하냐?
넌 좀 닥치래도...
담쟁이가 사라지자 새 벽은 정말로 새 벽이 아니었다.
담쟁이가 담벼락을 타고 자란다는 편견은 그것을 새 벽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번에는 새 벽임을 인정하기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부정할 수 없다.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속삭임이 저 멀리서 끊임없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의심하기를 포기한 자이다. 따라서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따라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정말 편한 정신승리군. 대단해.
안 닥치냐 진짜로...
흔들리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는다.
생각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 인식체계에서 새 벽은 더 이상 새 벽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이건 정말이다.
이번에도 나는 나 자신을 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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