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이 물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볼 때, 그들을 무시하는 감정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취죽이 답했다.
"들지 않는다"
횡설이 다시 물었다.
"어찌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사옵니까?"
취죽이 말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횡설이 직업의 귀천에 대하여 재차 질문하니, 취죽이 말하기를
"어떤 직업이 되었든간에 사회적 쓸모는 반드시 있다. 가령 이 세상에 전문 청소부가 없다면, 나는 오늘부터 직접 청소를 해야만 한다. 혹은 당장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게 된다면, 나는 내일부터 직접 논밭을 가꾸어야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하는 것에 있어 나는 흥미도 없고 의욕도 없다. 다시 말해 내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나 대신 해주는 직업을 내가 어찌 천하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이에게는 되려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이 없다면 나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
횡설이 고민하더니 다시 물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점은 알겠사온데, 말씀하신 직업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능력이 낮은 자들이 영위한다는 점에서 나보다 능력이 낮은 사람이라는 무시의 감정이 들지는 않습니까?"
취죽이 말했다.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측면에서는 분명 그들이 나보다 능력이 낮음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는 앞서 말한 그 측면에 있어서만 성립하는 우위관계일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나 역시 그들보다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나 역시 한낱 인간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특정 측면에서 자신보다 능력이 낮다는 이유로 나를 무시하면 나는 기분이 좋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나 역시 타인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모든 점에서 나보다 능력이 낮은 자가 있다고 가정한들, 이것이 그 인간 자체를 무시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무시란 대상을 무가치하게 취급함을 뜻하므로 그 인간 자체를 무시한다는 것은 그 자의 능력, 더 나아가 의견이나 생각 등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능력의 높고 낮음과 능력의 가치 유무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는 제 아무리 힘이 세다하여도
크고 무거운 짐을 옮길 때는 혼자 하는 것보다
비록 자신에 비해 힘이 약하더라도 함께 할 누군가가 존재할 때
더 편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의견이나 생각 따위의 경우를 설명하기에 앞서 나는 어떤 의견이나 생각이 무가치할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무가치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판단하기에 앞서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은 구별되어야하고 상대의 의견이나 생각을 무시한다는 것은 후자의 영역이다.
만일 상대방의 능력이 나보다 낮다면 그의 의견이나 생각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무가치할 가능성이 높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의견을 들어보거나 듣고서 심사숙고 해보기도 전에 미리 예단하여 무가치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능력이 나보다 낮다는 사실로부터 상대방 자체를 무시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도출 할 수 없다."
이에 횡설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귀천이 있사옵니까?"
취죽이 대답했다.
"인간에게도 귀천은 없다. 신분이 없는 현대에 이르러 어떤 이를 가리켜 귀하다 칭하고, 어떤 이에 대해서는 천하다 하려면 각자의 사회적 가치를 척도로 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영역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 속에서도 가치를 갖는다. 헌데 이 가치란 것은 주관적인 가치평가일 수 밖에 없으므로, 결국 우리는 객관적 기준에 따른 절대적 우위관계를 상상할 수 없다. 이처럼 사람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고, 따라서 평가할 수도 없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인간이 각자만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은 가히 모두가 귀하다 할 수 있는 논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귀하다면 이는 모두가 천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귀천의 개념은 무용하므로 귀천은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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